934년(태조 17)서경(西京)에 관택사를 두고 빈객 접대를 맡게 하였고 원리(員吏)로 경(卿) 2인, 대사(大舍) 2인, 사(史) 2인을 두었다.
이렇게 934년에 새로 관택사를 설치하게 된 것은 922년에 거란(契丹)이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오고 2년 뒤에는 고려에서 사신을 거란에 보냄으로써 거란과의 새로운 외교관계가 열리게 되었고, 또 발해의 세자 대광현(大光顯)이 무리 수 만을 이끌고 내투한 것을 비롯하여 발해의 유민이 계속 귀화하여오는 등 북방관계가 복잡해져 서경이 외교상 중요한 위치에 놓이게 된 까닭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