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사본(後寫本)이며, 1책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광양현읍지(光陽縣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호구(戶口) 항목에 을묘식년(乙卯式年)의 호구조사 결과를 준용하였다는 내용이 있어 1795년(정조 19) 이후에 작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필사본의 제작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보인다.
지도는 첨부하지 않았다. 수록 항목은 건치연혁(建置沿革), 읍호(邑號), 관직(官職), 방리(坊里), 성지(城池), 산성(山城),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학교, 서원(書院), 단묘(壇廟), 진보(鎭堡), 봉수(烽燧), 제언(堤堰), 장시(場市), 교량(橋梁), 역원(驛院), 죽전(竹田), 비보(裨補), 진선(津船), 사찰, 누정(樓亭), 제영(題詠), 비기(碑記), 고적(古跡), 형승(形勝), 도서(島嶼), 물산(物産), 호구(戶口), 전총(田摠), 봉름(俸廩), 잡역(雜役), 창고(倉庫), 군액(軍額), 인물, 과환(科宦), 섬진지(蟾鎭誌: 건치(建置) · 도로 · 공해(公廨) · 창고 · 관료(官料) · 군료(軍料) · 군액) 등으로 구성하였다.
다른 읍지와 비교하면 내용이 상세한 편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하여 작성된 고종 대의 『호남읍지(湖南邑誌)』[1871년 ·1895년]에 수록된 「광양읍지(光陽邑誌)」와 비교해 보면, 발문(跋文)과 지도, 공해, 서판(書板), 진공(進貢), 상납(上納),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조적(糶糴), 군기(軍器), 선생안(先生案) 등과 섬진지 항목의 조적 · 군기 · 선생안 · 발(跋) 등이 빠져 있다. 1899년(광무 3)에 간행된 『전라남도 광양군읍지』에는 보다 많은 내용이 첨삭되어 있다. 수록된 군 지도가 더욱 상세해졌으며, 선생안 항목에 기록된 역대 현감 · 군수의 수가 1895년 『호남읍지』에 비해 18명이 더 많다.
『광양읍지』를 비롯한 광양현[군]의 읍지는 다른 읍지에 없는 죽전, 비보 등의 항목과, 섬진강 입구에 설치된 군사요충지의 지지(地誌)인 ‘섬진지’를 별도로 작성하여 첨부한 점이 특징이다. 비보 항목에는, 광양현 중심지의 서쪽과 남쪽이 허하다는 술사(術士)의 말에 따라 수목을 심었다는 풍수적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