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교수형을 말한다. 이는 사형의 방법 중에서 비교적 온건한 형태에 속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 시작되었고,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시행되어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전근대시대에 사형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참형(斬刑)과 교형이었다. 전자가 신체를 절단하는 극형이었음에 비해 후자는 신체를 온전히 유지시킨 점에서 다소 가벼운 형이었다.
참형은 주로 반역·살인·강도 등 극죄인에게 행해졌고, 교형은 강상죄(綱常罪)·절도죄·군율위반자 등 중죄인에게 행해졌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부녀자들에게는 참형을 낮추어 교형을 적용하기도 하였다. 또, 조선시대에 지위가 높은 양반 죄인들에게는 교형을 낮추어 사사(賜死)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대에는 주로 참형을 행했으나, 근세에 내려오면서 점차 교형이 보편화되었다. 전자가 보통 공개적으로 행해지는 데 비해 후자는 격리된 곳에서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시대 교형에 해당하는 범죄는 존속에 대한 살상·구타·밀고, 노비의 하극상 및 주인 신주(神主)의 소각, 부녀자의 부족(夫族)에 대한 살상 등의 강상죄 등이 있다. 이외에 화폐 위조, 금지 물품의 밀수출입, 금은의 사채, 진상품의 절취 등 경제사범과 월경 도주, 외국인과의 비밀 접촉, 국가 기밀 누설 등의 반국가사범 및 기타 공문의 위조, 분묘 발굴, 혹세무민, 군율 위반 등이었다.
교형은 경우에 따라 금전으로 속죄받을 수 있었는데, 그 값은 고려시대에는 동 120근, 조선시대에는 동전 42관(貫) 혹은 오승포 210필이었다. 속죄법은 중국에서 도입된 제도였으나 실제로는 잘 시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