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능성(綾城,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인조반정의 일등공신 구굉(具宏)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구상정(具尙禎), 할아버지는 통제사를 역임한 구성익(具聖益), 아버지는 구선장(具善長)이고, 어머니 경주김씨는 김한창(金漢昌)의 딸이다. 부인은 신진(申晉)의 딸이다.
1786년(정조 10) 역모사건을 꾀했던 구선복(具善復)의 아버지 구성필(具聖弼)은 백부 구수정(具守禎)의 양자로 들어갔지만, 구명겸의 할아버지 구성익과는 친형제 사이이다. 그러므로 구명겸은 구선복의 재종조카이자, 혈연으로는 종조카이다. 그런데 구명겸의 둘째 아들 구석화(具錫和)가 구선복의 계자(系子)인 구이겸(具以謙)의 양자가 되면서 구선복과 구명겸은 부자 사이로 간주되기도 한다. 또 이담의 외할아버지인 송낙휴(宋樂休)의 처남이다.
1760년(영조 36)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되고, 1762년 중화부사(中和府使)가 되었다. 이듬해에 사헌부의 장령 한필수(韓必壽)가 전적 오덕일(吳德一)에게 방약무도하게 군 구명겸을 잡아 신문할 것을 청한 일이 있었다. 임금은 구명겸의 예를 들어, 전조(銓曹)에 명하여 세력 있는 무변(武弁)이 연소한 나이에 빨리 수령으로 나가는 폐단에 대해 각별히 신칙(申飭)하도록 하였다.
1772년에 승지(承旨), 1774년에 충청도수군절도사, 1777년(정조 1)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779년에는 좌포도대장을 거쳐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에 이르렀다. 그 뒤 1783년 원주목사를 지냈으며, 그 이듬해에는 좌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1786년(정조 10) 구선복이 상계군 이담(李湛)을 왕으로 추대하는 역모에 연루되어 효시되었다. 이때 작은아버지 구선형(具善亨), 동생 구의겸(具宜謙) · 구득겸(具得謙), 조카 구누랑이(具屢郞伊) 등이 연루되거나 연좌의 죄를 입었다. 구선복과 함께 재산을 몰수당하고, 부인 정임(丁任), 아들 정화(鼎和) 등 가솔들은 유배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