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선전관, 장기현감, 삭주부사, 평안도방어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 등을 지낸 무관.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이후 진로를 무(武)로 바꿔서 30세인 1750년(영조 26)에 식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명문 집안의 자제 중 선전관(宣傳官) 후보자를 미리 천거해 놓는 선천(宣薦)에 들었다. 같은 해에 서반 청요직(淸要職)인 선전관을 거쳐 훈련원(訓鍊院)의 주부(主簿)와 첨정(僉正), 도총부(都摠府) 도사(都事) 등을 지냈다.
1760년(영조 36) 장기현감, 1772년 해남현감, 1775년 광양현감, 1776년(정조 즉위년) 충주영장(營將), 1780년(정조 4) 경기도우방어사 등을 지냈다. 1781년에 평안도방어사를 거쳐 1783년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에 올랐으며, 1784년에 좌수영(左水營) 관사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51세인 1771년에 경상도 삼가(三嘉)에 오담정사(梧潭精舍)를 짓고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제자도 모여들어 송석유(宋錫楡) · 신돈항(愼敦恒) · 권득중(權得中) 등이 와서 배웠다. 하지만 1779년에 아들이 죽자 이듬해에 단계(丹溪)로 돌아왔다. 문집으로는 1915년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오담선생문집(梧潭先生文集)』(2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원전
- 『경오식년문무과방목(庚午式年文武科榜目)』
- 『단성현읍지』
- 『승정원일기』
- 『안동권씨세보(安東權氏世譜)』
- 『영조실록』
- 『오담선생문집(梧潭先生文集)』
- 『정조실록』
논문
- 정해은, 「18세기 경상도 단성현의 한 양반 무과급제자의 사환(仕宦)과 처세」(『조선시대사학보』 26, 조선시대사학회, 200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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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양자의 생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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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무과 급제 : 『경오식년문무과방목(庚午式年文武科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朝26-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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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시대에, 선전관청에 속한 무관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 품계는 정삼품부터 종구품까지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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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새로 무과에 급제한 사람 가운데에서 선전관의 후보자를 천거하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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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조선의 관직중 일부를 묶어서 말하는 것으로, 청렴해야 하는(淸) 중요한(要) 자리(職)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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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조선 시대에, 군사의 시재(試才), 무예의 연습, 병서의 강습 따위를 맡아보던 관아. 세조 12년(1466)에 훈련관을 고친 것으로, 융희 원년(1907)에 한일 신협약의 체결에 따라 해산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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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조선 시대에, 오위(五衛)의 군무(軍務)를 맡아보던 관아. 중앙의 최고 군사 기관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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