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3년(경종 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27년(영조 3) 김천 찰방(察訪)이 되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 등이 밀풍군(密豐君) 이탄(李坦)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도순무사(都巡撫使) 오명항(吳命恒)을 따라 난을 평정하였다. 그 공로로 6품으로 승급되고, 설서(說書), 병조좌랑(兵曹佐郞), 정언(正言) 등이 되었다. 또 11월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청에 갔다가 이듬해 4월에 귀국하였다.
1737년 문학(文學), 1738년 필선(弼善), 1739년 헌납(獻納), 1745년 의주(義州) 부윤府尹), 1748년 참핵사(參覈使), 1749년 승지(承旨), 1755년 형조참판, 1760년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었다. 홍양호(洪良浩)의 문집 『이계집(耳溪集)』에 권일형의 묘갈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