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호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여신(汝信)
인물/전통 인물
  • 본관능성(綾城, 지금의 전라남도 화순)
  • 사망 연도1614년(광해군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좌랑|정언
  • 출생 연도1565년(명종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호
  • 최종수정 2025년 0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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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호조좌랑,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여신(汝信). 구희경(具希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감찰 구순(具淳)이고, 아버지는 구사민(具思閔)이며, 어머니는 임극(任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6년(선조 39)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호조좌랑을 거쳐 정언(正言)을 역임하였다. 이때 언관(言官)으로서 소북파인 유영경(柳永慶) · 이유균(李惟均) 등과 함께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세자로 옹립하려는 데 참여하였다.

그러나 그 뒤 선조가 죽자 대북파인 정인홍(鄭仁弘) · 이이첨(李爾瞻) 등이 추대하는 광해군이 즉위함에 따라 대간의 탄핵을 받게 되었다. 유영경은 경흥에 유배되어 사사되고, 이유균은 종성에 유배되었으며, 구헌은 오위도총부부사과(五衛都摠府副司果)의 신분으로 창성(昌城)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창성 유배 : 『광해군일기[중초본]』 3권, 1608년(광해 즉위년) 4월 29일. "구혜·김대래·남복규·이효원 등을 귀양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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