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인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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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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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 조선시대 왕이나 왕세자의 후궁 및 궁중 여관(女官 : 궁녀)들의 내명부 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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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 조선시대 왕이나 왕세자의 후궁 및 궁중 여관(女官 : 궁녀)들의 내명부 직함.
내용

내명부직 혹은 내직이라고도 불렀는데, 후궁을 내관(內官), 궁녀를 궁관(宮官)이라고도 불렀다. 궁인은 궁궐내의 모든 여인들을 의미했으나, 보통은 왕과 왕세자의 후궁들을 지칭했다.

고려시대에는 원주(院主)·궁주(宮主)·옹주 등의 궁인직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왕의 후궁으로 빈(嬪)·귀인(貴人)·소의(昭儀)·숙의(淑儀)·소용(昭容)·숙용(淑容)·소원(昭媛)·숙원(淑媛) 등의 직명이 있었다. 왕세자의 후궁으로는 양제(良娣)·양원(良媛)·승휘(承徽)·소훈(昭訓) 등의 직함이 있었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궁인직제는 1428년(세종 10)에 대체로 정비됐다. 연산군 때는 무절제한 행각으로 궁인직을 남발하여 지방 출신의 기생들에게까지 수여하였는데, 1505년(연산군 11) 9월에는 가인(佳人)·재인(才人)·여인(麗人) 등 135개의 궁인칭호를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모든 비정상적인 궁인직이 폐지되었다. →내명부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역주경국대전(譯註經國大典)』-주석편-(한우근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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