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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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상의원별좌, 별제, 동궁의부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인보(仁甫)
  • 진봉(震峰)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652년(효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상의원별좌
  • 출생 연도1575년(선조 8)
  • 출생지경상북도 안동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오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5년 06월 19일
진봉선생일고 미디어 정보

진봉선생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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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상의원별좌, 별제, 동궁의부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인보(仁甫), 호는 진봉(震峰). 안동 이계리(伊溪里) 출생. 아버지는 증집의(贈執義) 권대기(權大器)이며, 어머니는 곡강배씨(曲江裵氏)이다. 권춘란(權春蘭)의 문인이다.

아버지와 형 권우(權宇)는 이황의 문인으로 학덕이 높았으므로, 어려서부터 부형의 가르침을 받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3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1627년 학행으로 추천을 받아 상의원별좌(尙衣院別坐)가 되었다.

그 해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왕실을 호종하여 소무(昭武)와 영사(寧社)의 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고 별제(別提)에 승진하였으나, 병으로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1630년 동궁의 부수(副率)가 되고, 1633년 영릉참봉(英陵參奉)이 되었으나 곧 사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치욕을 당하자 시를 지어 국가의 운명을 개탄하고 태백산 진봉(震峰) 아래 들어가서 띳집을 짓고 와룡초당(臥龍草堂)이라 이름한 뒤, 앞에 작은 단을 쌓아 ‘대명오(大明塢)’라 하고 대나무를 심어 굳은 절개를 표하였다. 저서로는 『진봉일고(震峰逸稿)』 2권이 있다.

참고문헌

  • - 『진봉일고(震峰逸稿)』

  • - 『만력31년계묘식년사마방목(萬曆三十一年癸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4])

주석

  • 주1

    : 사마시 급제 : 『만력31년계묘식년사마방목(萬曆三十一年癸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의산古6024-114]).

  • 주2

    : 권굉 저술 : 『진봉선생일고(震峯先生逸稿)』(규장각한국학연구원 奎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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