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전제관장, 보문관장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2월 25일경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 보고와 국장 참배를 위하여 상경했을 때 손병희·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에게, 3·1운동 계획을 들었다.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이 달 27일에 최린(崔麟)·오세창·임예환(林禮煥)·나인협(羅仁協)·홍기조(洪基兆)·김완규(金完圭)·나용환(羅龍煥)·홍병기(洪秉箕)·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 등과 함께 김상규(金相奎)의 집에 모여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였고, 이들과 함께 민족대표로서 성명을 열기하고 날인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경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에는 민족대표 33인으로 서명한 사람 중에서 29인이 모였다. 이 때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해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는 만세삼창을 외치고 일본경찰에 자진해 붙잡혀 2년 동안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천도교 종리원(宗理院)의 서무과 주임을 거쳐, 중앙교회 심계원장·감사원장·선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1922년 말 천도교 신파가 ‘천도교 연합회’를 설립하여 분립하자, 천도교에서 탈퇴하여 수운교와 상제교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27년 이후 신간회에서 활동하다가, 신간회가 해체되자 다시 천도교 구파로 돌아왔다.
저서로는 『조선총사(朝鮮總史)』·『이조전란사(李朝戰亂史)』·『궁중비사(宮中秘史)』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자료집』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3·1운동비사』(이병헌, 시사시보사,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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