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주보(周甫), 호는 성포(星圃). 안동부 석남리(石南里) 출생. 아버지는 권환(權睆)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김익한(金翼漢)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2세에 육경(六經)을 독파하고 사장(詞章)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과거공부를 좋아하지 않고 성리학에 잠심했다. 1789년(정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91년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서학을 배척하는 소를 올렸으며, 1800년 영남유생들을 대표해서 척사소를 올렸다.
친상을 당하여 3년 시묘한 뒤, 뜻하는 바가 있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봉산서당(鳳山書堂)에서 강회를 열어 후학을 개도했다. 『예서(禮書)』에 대해 이론의 시비가 있음을 보고 『오례보정(五禮補正)』을 찬정(撰定)하였다.
특히,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국민개학(國民皆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서로는 『성포일고(星圃逸稿)』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