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효(景孝), 호는 각재(覺齋). 아버지는 권재봉(權載鳳)이며, 어머니는 상주주씨(尙州周氏)로 주진열(周軫烈)의 딸이다.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또 송병순(宋秉珣)·최익현(崔益鉉)·전우(田愚) 등과 교유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스승 송병선이 자결했는데, 권삼현은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동문들과 스승의 문집을 편집·간행하였다. 1909년 송병순이 만동묘(萬東廟) 복원을 주장하자 그를 도와 복원사업에 앞장섰고, 또 1910년 송병순의 명을 받들어 대축(大祝)으로 황묘(皇廟)를 제향하였다.
그러나 1912년 송병순마저 순국하자 초계(草溪) 붕산(鵬山)에 은거하여 강학하였다. 1916년 가솔(家率)을 거느리고 황해도 깊은 산중에 숨어 강학과 나물을 뜯고 낚시질을 하며 소일하다가 1918년 부친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칩거하였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천인성명(天人性命)·화이존양(華夷尊攘)의 학문을 전수받아 기정진(奇正鎭)학파와의 논쟁거리였던 이기설(理氣說)에 있어서 이이(李珥)의 학설을 쫓아 주기(主氣)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제자로는 권용현(權龍鉉)·유상대(柳相大) 등이 있으며 저서에는 『각재문집(覺齋文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