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수(子守), 호는 동암(東巖). 영주군 도지촌(道知村)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경기전참봉 권호신(權虎臣)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선무랑 박우(朴遇)의 주1
자질이 총명하여 일찍부터 문장을 잘하였고, 1612년(광해군 4) 주2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기용되었다. 이어서 학유(學諭) · 박사 · 전적(典籍) 등을 역임하고, 1616년 강계판관으로 부임 도중 칠원현감으로 체직되었다. 정인홍(鄭仁弘)의 미움을 받아 사직하였다.
곧 이어 유곡찰방(幽谷察訪)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이듬 해 사헌부감찰 · 예조좌랑을 거쳐 경상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아니하였다. 이어서 공조와 형조의 정랑을 지냈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으로 인조가 강화도로 파천할 때 호종하였다.
이듬 해 보령현감으로 가 백성을 위하고 부세를 경감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그 뒤 관계에 나가지 아니하고 후학을 교육하였다. 저서로는 주3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