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고경(顧卿), 호는 양재(陽齋). 고부 출신. 아버지는 권원(權源)이고, 어머니는 강릉유씨(江陵劉氏)로 유종갑(劉鍾甲)의 딸이다.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1910년 경술국치 뒤로는 스승을 따라 서해의 군산도(君山島)·왕등도(旺嶝島)·계화도(繼華島) 등지에서 15년 동안 학문에 몰두하여 화도주석(華島柱石: 중심되는 인물이라는 뜻)이라고 불리었다.
그 뒤 스승의 문집·예설(禮說)·연보(年譜)·척독(尺牘) 등을 편집, 출간하였으며, 1937년 47세 때 척독을 편집하기 위해서 전국 팔도에 통문을 발송한 사건으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 때 삭발을 강요당하자, 장도(粧刀)를 가지고 스스로 목을 찔러 피가 낭자하였으므로, 왜경들이 감복하여 풀어주었다.
경학·예설·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유학의 진흥을 위해 면학당을 세워 후진들을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고부 태산사(台山祠)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양재집(陽齋集)』 11책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