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사임(士任), 호는 매헌(梅軒) 또는 백률당(柏栗堂).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금원수(琴元壽)이고,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장령(掌令) 김영수(金永銖)의 딸이다.
1546년(명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때 인종이 죽고 간당들의 화가 일어나자 대과에 응시할 뜻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그 뒤 성리학에 뜻을 두고 이황(李滉)에게 수학하였다. 남계(南溪)에 한서암(寒栖菴)을 짓고 주서(朱書)를 읽으면서 사서 공부의 보조자료로 삼았다.
한서암을 읊은 이황의 증시(贈詩)가 있으며, 만년에는 온계(溫溪)의 송내(松內)로 처소를 옮겼다. 거경(居敬)·궁리(窮理)로 학문의 종지를 삼고, 경(敬)·성(誠)·화(和) 3자로 마음을 다스리고 사람을 상대하며 집을 다스리는 법을 삼았다.
또한 글씨에도 뛰어나 이숙량(李叔樑)·오수영(吳守盈)과 더불어 삼절(三絶)이라 불리었으며, 퇴계묘비(退溪墓碑)·도산신판(陶山神版) 등은 그의 작품이다.
저서로는 『사서질의(四書質疑)』·『심근강의(心近講義)』·『가선휘편(嘉善彙編)』·『사례정변(四禮正變)』·『사례기문(四禮記文)』 등이 있었으나 병화에 모두 소실되었고, 다만 『매헌집(梅軒集)』 1질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