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득정(得正). 검교태자첨사(檢校太子詹事) 권덕여(權德輿)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2, 13세에 이미 사서오경을 통달하였고, 16세에 청평산(淸平山) 문수사(文殊寺)에서 당시 수재로 이름을 떨치던 이자현(李資玄)과 교유하며 학문을 닦았다.
예종 때 유학생으로 뽑혀 송나라의 태학(太學)에 입학, 당시 한창 일고 있던 주돈이(周敦頤)·정호(程顥)·정이(程頤) 등의 학문을 연구하여 대성하였다. 이어 송나라에서 실시한 만인과(萬人科)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나, 1117년(예종 12) 귀국하였다.
예종은 그의 재주와 학문을 높이 인정하여 국자좨주(國子祭酒)에 등용하였다. 그 뒤 한림학사에 임명되었으며, 판전객시사(判典客寺事)와 밀직부사 등의 요직을 거쳐 검교태자태보(檢校太子太保)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