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필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에 의열단에 입단하여 항일 독립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권동산(權東山), 권재만(權在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6년
사망 연도
1935년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경상북도 안동
주요 경력
독립운동가
대표 상훈
건국포장(1982)|건국훈장 애국장(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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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권정필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사회주의 이념에 공명하여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활동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에 의열단에 입단하여 항일 독립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가계 및 인적 사항

권정필(權正弼)은 1886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1935년에 사망하였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이명은 권동산(權東山), 권재만(權在萬)이다.

주요 활동

1919년 11월 만주로 망명하여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곧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의 명령으로 서울에 들어왔다. 1922년 2월 15일 의열단원 남영득(南寧得)이 거사를 목적으로 폭탄을 상하이에서 서울로 운반하려고 하였다. 폭탄 운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유병하(柳秉夏) · 유시태(柳時泰) 등과 협의한 뒤 장탄된 권총 한 자루를 가지고 서울 내자동 이인희(李麟熙)의 집으로 들어가 군자금 8,000원을 요구하여 50원을 받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다시 만주 안동에서 의열단원 김시현(金始顯) · 황옥(黃鈺) · 김지섭(金祉燮) 등과 함께 조선 총독을 비롯하여 일본인 고관 암살과 주요 관공서 파괴를 목적으로 폭탄 30개, 권총 13정과 「조선혁명선언격문」 등을 서울로 반입하다가 동지들이 체포되자 김지섭과 함께 만주로 피신하여 계속 활동하였다.

1921년 경성에서 열린 조선노동대회에 입회하였고, 국제공산당 주최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동양민족대회에 출석하였다가 이르쿠츠크 공산당기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25년 지린성〔吉林省〕 안동현 경성에서 이진동 · 김득수 · 이갑득 등과 만주공산당을 조직하고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또 북만주청년동맹을 결성하여 지도하였으며,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자 지부로 아성현에 만주총국을 조직하고 야체이카 책임자로 활약하였고, 농민조합을 조직하였다.

1927년 9월 용정촌에서 만주총국 간부회의를 개최하던 중 검거되었다. 1930년 만주총국을 해체하고 1931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2년에는 봉천총영사관 경찰에 검거되어 신의주로 송치되어 취조받았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3‧1운동부터 조선 독립을 위하여 만주에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공산주의에 공명하여 공산당에서 활동한 만주공산당의 거두”라고 하였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 중 급성 위장병으로 형기 5개월을 남기고 형 집행정지로 출옥하였으나, 1935년 12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권정필의 공훈을 기려 1982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국사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1968)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신문 기사

『동아일보』, 1935. 12. 17.
『동아일보』, 1932. 12. 25.
『동아일보』, 1932. 12. 18.
『동아일보』, 1932. 3. 10.

판결문

대구복심법원 1919. 9. 30.
대구지방법원, 1919.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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