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일은 일제강점기에 만주 지린성 훈춘현에서 무장투쟁을 활발하게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동포들에게 애국사상을 전파하고 황병길·박정환·채덕승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6년 장쭤린의 부하 왕잉창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고 1928년 사망하였다.
강병일(姜秉一)은 1888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강병일(姜丙日)이다.
1919년 만주 지린성〔吉林省〕 훈춘현〔琿春縣〕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애국사상을 고취하였다.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서는 황병길(黃丙吉)을 모집 대장으로 독립군 및 군자금 모집에 전력하였으며, 이를 위해 대한국민의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산하 단체인 급진단(急進團)을 통하여 러시아령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무장투장을 전개하려고 하였다.
급진단은 이후 의사단(義士團)과 최경천(崔慶天)의 포수단(砲手團)을 통합하여 군무부(軍務部)로 개편되었다. 강병일은 항일투쟁을 계속하기 위하여 박정환(朴政煥) · 채덕승(蔡德勝) · 한경석(韓京錫) 등과 모금 활동을 하였다. 이들은 러시아령에 사는 동포들을 대상으로 25만 루블을 받아 군무부 군무부장 황병길에게 전달하였다.
강병일은 1926년 장쭤린〔張作霖〕의 부하 왕잉창〔王營長〕에게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고 1928년 사망하였다. 강병일의 아내도 일본 경찰에 피살되었다. 강병일은 순국하기 전까지 훈춘과 연해주에서 항일 무쟁투쟁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병일의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