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직장, 장례원사평, 봉화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문신·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직장(直長) · 장례원사평을 지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모의 봉양을 위해 고향에 은거하다가 정유재란 때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많은 선비들이 호응해서 참가하고 지방민들은 군량미를 헌납했다.
그 해 성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599년 고향인 봉화의 현감에 임명되어 1년 만에 사임하고 집에 돌아왔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예안(禮安)의 동계정사(東溪精舍)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성재집(惺齋集)』이 있다.
참고문헌
- 『동유사우록(東儒師友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가정40년신유8월19일사마방목(嘉靖四十年辛酉八月十九日司馬榜目)』(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연민,고 920.051 가35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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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가정40년신유8월19일사마방목(嘉靖四十年辛酉八月十九日司馬榜目)』(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연민,고 920.051 가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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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금난수 저술 : 『성재집(惺齋集)』(한국문집총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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