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문원(聞遠), 호는 성재(惺齋) 또는 고산주인(孤山主人). 경상북도 봉화 출생.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금헌(琴憲)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교수 남식(南軾)의 딸이다. 처음 김진(金進)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서 수학하였다.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77년(선조 10) 제릉(齊陵)의 참봉을 비롯하여 집경전(集慶殿)과 경릉(敬陵)의 참봉을 지내고, 1585년 장흥고봉사(長興庫奉事)가 되었다.
그 뒤 직장(直長)·장례원사평을 지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모의 봉양을 위해 고향에 은거하다가 정유재란 때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키니 많은 선비들이 호응해서 참가하고 지방민들은 군량미를 헌납했다.
그 해 성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599년 고향인 봉화의 현감에 임명되어 1년 만에 사임하고 집에 돌아왔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예안(禮安)의 동계정사(東溪精舍)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성재집(惺齋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