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시대 거문고 악보를 지칭하는 용어.
내용
이들 ‘금보’는 『금합자보(琴合字譜)』·『양금신보(梁琴新譜)』 등 목판본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필사본(毛筆寫本)이며, 또한 유일본이다. 악사(樂師) 또는 문인(文人)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이들 금보는 민찬악보(民撰樂譜)로서 1책으로 되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금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금합자보』로 1572년(선조 5)에 만들어졌으며, 조선 말기인 고종 때의 금보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민족항일기에는 미농지(美濃紙: 일본 종이의 하나. 닥나무 껍질로 만드는데 아주 얇고 질기며 빛이 휨) 또는 당시에 사용하던 원고지에도 기보하였다.
편저자 및 연대가 확실한 것도 있으나, 대부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악보에 따라서 서(序)·발(跋)·지(識) 등이 있는 것도 있으나 없는 것이 더 많다. 악보의 크기는 다양하며 대개 선장(線裝)으로 만들었다.
기보법(記譜法)은 정간보(井間譜)를 사용하여 정확한 시가(時價)를 나타낸 것도 있으나, 대강보(大綱譜) 또는 채색(彩色)으로 약간의 구분을 한 것 등 그 시가를 분명히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또한, 육보(肉譜)·합자보(合字譜)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으며, 그 중에서 육보가 가장 많이 쓰였다. 거문고 악보 이외에도 적(笛: 大笒)·장구[杖鼓]·북[鼓]·양금(洋琴)·소(簫:洞簫) 등 다른 악기들의 악보를 함께 실은 것도 있다.
의의와 평가
또한, 금보에 적혀 있는 주(註)와 잡기(雜記)들은 음악 연구에서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 구실을 하기도 하며, 우리 민족의 음악미(音樂美)·음악관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준다. 국악계에서는 ‘금보’라고만 적혀 있는 이 악보들을 편저자명, 서문·발문의 필자명 또는 아호(雅號), 소장자명 등을 ‘금보’의 앞에 접두어식으로 붙여 혼란을 피하고자 구별하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음악론고』(성경린, 동화출판공사, 1976)
- 「고악보해제보유 Ⅱ」(이동복, 『예로』 창간호, 경북대학교예술대학, 1985)
- 「고악보해제보유 Ⅰ」(이동복, 『한국음악연구』 8·9합병호, 한국국악학회, 1979)
- 「고악보해제」(장사훈, 『국악논고,』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 「현존한국악보」(송석하, 『한국민속고』, 일신사,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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