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6년(순조 16) 박준원의 아들 박종보(朴宗輔)에 의해 편집·간행되었다. 권두에 유한준(兪漢雋)의 서문이 있다.
12권 5책. 고활자본(전사자).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4에 부(賦) 1편, 시 560여수, 권5∼7에 서(書) 99편, 권8에 서(序) 4편, 기(記) 9편, 발(跋) 2편, 찬(贊) 3편, 명 11편, 상량문 2편, 잡저 4편, 권9에 제문 6편, 애사(哀辭) 3편, 권10에 묘표 1편, 묘지명 4편, 행장 1편, 권11·12에 부록으로 전교(傳敎)·사제문(賜祭文)·신도비명·제문·행장·묘지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감주부(甘澍賦)」는 1794년(정조 18) 왕이 태묘(太廟)에 배알하고 신명(神明)으로부터 감주를 얻어 팔방(八方)의 한곡(旱穀)에 적시는 의식을 찬미한 것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시는 대개 운치가 있고 서정이 풍부하다. 「간화(看花)」는 세인(世人)이 꽃의 색깔을 좋아하나 자신은 꽃에 내재된 기운을 사랑한다 하여 깊은 관조의 세계를 상상하고 있다. 「몽금강(夢金剛)」은 꿈속에서 자신이 신선이 되어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전기적 동경심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악원장편(樂院長篇)」은 7언체의 장시로 평생 음악을 좋아했지만 집이 가난해 관현(管絃)이 없음을 한탄하고, 다만 새소리와 물소리가 있어 태고(太古)의 신비에 유락(遊樂)하는 즐거움으로 자위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사(旅思)」는 객관(客館)에서 고향 생각에 젖어 있는 쓸쓸한 심회를 그린 것으로 나그네의 우수가 잘 묘사되어 있다. 「환가(還家)」는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와 느끼는 즐거움을 묘사한 시이다. 그밖에 만시(輓詩)로 박지원(朴趾源)에 대한 「족형연암만(族兄燕巖輓)」이 주목을 끈다.
서(書)에는 저자의 맏형인 박윤원(朴胤源)에게 보낸 것이 무려 50편에 달하고 있다. 그 중에는 『맹자』·『대학』·『시경』·『서경』·『예기』 등에 관한 경의(經義) 해석과 각종 예설을 질문한 문목(問目)·별지(別紙)가 많다. 이 밖에 먼 친척 형인 박지원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그 편지 내용 중에는 그의 선조 묘소에 대해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평가를 내린 부분이 있어 흥미를 끈다.
명의 「자해낭명(子亥囊銘)」은 당시 왕실의 풍속으로 해마다 정월의 첫 자일(子日)과 해일(亥日)에 각각 주머니를 만들어 오곡 씨앗을 담아 종실(宗室)과 귀척(貴戚)에 나누어주어 풍년과 복택(福澤)을 기원했는데, 이를 기념하는 뜻으로 지은 글이다. 민속사 연구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잡저에는 「토로설(土爐說)」·「사설(射說)」 등 문학적 수상(隨想)을 나타낸 글이 대부분이다. 부록에는 외손인 순조(純祖)의 전교(傳敎)와 사제문(賜祭文) 5편이 있어 주목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