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양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가례부해』, 『삼기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 삼기당(三棄堂), 원둔옹(遠遯翁)
  • 자선(子善)
인물/전통 인물
  • 본관봉화(奉化)
  • 사망 연도1663년(현종 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98년(선조 31)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능하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가례부해』, 『삼기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자선(子善), 호는 삼기당(三棄堂)·원둔옹(遠遯翁). 세거지는 안동(安東) 예안(禮安)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정(軍資監正) 금윤고(琴胤古), 어머니는 화원서씨(花園徐氏) 진사(進士) 서천일(徐千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효우(孝友)가 남다르고 문재(文才)가 뛰어나 약관에 벌써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618년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고, 이어 회시(會試)를 지망했다가 광해조의 폐모론(廢母論)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그만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조반정 이후 주위의 권유로 다시 과거 공부를 하여 1636년(인조 14) 동당시(東堂試)에 장원으로 합격하였으나, 병자호란(丙子胡亂)이 발발함으로 드디어 세상에 발길을 끊고 관향지(貫鄕地)인 봉화(奉化)로 들어가 원둔(遠遯)·마곡(磨谷) 등지로 옮겨 다니며 거문고와 독서로 소일하였다. 원둔옹(遠遯翁)이란 호가 바로 이 때 붙여진 것이다.

또 후진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많은 선비를 배출시켰다. 뒤에 영남 유림에서 상소로 시호를 청하였는데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증직되고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향사(鄕社)인 귀산사(龜山祠)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가례부해(家禮附解)』와 『삼기당문집(三棄堂文集)』이 있는데, 전자는 출간되지 않았고, 후자는 뒤늦게 영편을 수집,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 - 『봉화읍지(奉化邑誌)』

  • - 『삼기당문집(三棄堂文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