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란 인간과 신과의 내면적 교통이며 인격적 접촉으로서, 모든 종교현상의 중심이며 신앙생활의 근본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기도원은 인간의 종교적 소망과 신의 은총이 극렬하게 융합되는 장소이다.
따라서, 기도원은 세속경험과는 전혀 다른 종교경험을 유발하여 평신도에게는 영성을 개발할 계기를 마련해주고, 종교전문가에게는 창조적인 종교경험을 생성하게 하여 새로운 종교사상을 만들어내게 한다.
그리고 상호이질적인 일상경험과 종교경험을 만나게 함으로써 기도자의 정신적 모순과 갈등을 해소해준다. 그러나 신비적 종교체험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열광적 신비주의에 빠져 건전한 사회상식을 무시하게 되어 사회적으로 말썽을 빚기도 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기도생활을 나름대로 강조하고 있다.
종교생활이 지나치게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되어 영성적 에너지를 재충전할 필요가 있는 경우나, 아직 종교경험이 정형화되지 못하여 종교체험만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때 더욱 그러하다.
전자의 대표적 예로는 개신교를 들 수 있고 후자의 대표적 예는 신종교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도원이 중요한 구실을 하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서술하기로 한다.
개신교의 기도원에 대한 정확한 연원을 찾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각처에 기도원이 번성하고 한국개신교의 독특한 신앙양상으로까지 발전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 나라 종교의 문화전통에서 보면 기도원 신앙형태가 우리 나라 사람에게 적합한 신앙형태의 하나라는 점이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종교적 욕구를 집단예배로 해결하는 방법에 별로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종교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대부분 개별적으로 수련을 하거나 치성을 드린다. 즉, 집단적 종교생활은 개인적인 종교갈증을 해소하는 데는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개신교의 초기 신앙전통에서 비롯된다. 경건보수신앙을 이어받은 초기 개신교는 ‘신앙만의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신도들은 사경회와 새벽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한 개신교의 기도운동은 1907년 대부흥회운동 이후 꾸준히 개교회별로 확장되었다.
셋째, 사회적 환경을 들 수 있다. 3·1운동의 좌절과 일제수탈이라는 민족적 울분을 해소할 길 없는 민중은 절망감에서 벗어나고자 현실도피적이고 내세지향적인 개인 영혼구원에 몰입하게 되었고 그 결과 신비적·종말론적 성격을 드러내는 부흥회에 쉽게 빠지게 되었다.
넷째, 그와 때를 같이하여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운동(五旬節運動)이 1928년부터 우리 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미국의 초기 오순절운동의 집회에서는 방언, 축귀, 신유, 예언, 통성기도 등의 의례 행위를 보이는데, 이는 오순절운동이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령중심주의적인 신념은 우리 나라 기도원 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오순절운동의 집회에서 보이는 의례 행위들이 우리 나라의 기도원들의 집회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요인들은 기도원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광복 이전에는 오늘날처럼 산속에 정식으로 기도원을 설치하고 공개집회를 갖지는 않았다. 즉, 백두산산상기도회·금강산기도회·경주약수기도회·서울삼각산기도회 등이 유명하였으나 어디까지나 기도회에 불과하였다.
현재와 같은 기도원이 설립된 것은 광복 이후이며, 1945년 목사 유재헌이 강원도 철원군에 세운 대한기독교수도원이 그 효시이다.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와 개인의 영성 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기도원을 설립한 후 부흥사로 활동하였으나, 6·25전쟁 때 납북당하였다.
그 뒤 목사 나운몽(羅雲夢)이 경상북도 금릉군에 용문산기도원을 세웠다. 이는 오순절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현재에도 우리 나라 기도원의 중요한 일맥을 이루고 있다.
더구나 오늘날 대한예수교 오순절성결회라는 독립교단으로 변신할 정도로 기도원운동에서 출발하여 체계적인 교단을 성립시킨 대표적인 경우이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기도원은 더욱 급속히 확산되었다. 박신출의 서울삼각산제일기도원을 비롯하여 삼각산특별기도원 등 20여 개가 일시에 전국에 설립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급속하게 증가한 기도원은 지나친 신비적 열광주의 때문에 사회 및 교계에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사이비 의료행위나 정신병자수용소 구실을 하거나 전국 유명산을 훼손시키고 일부는 탈선의 온상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70년 새마을운동의 전개와 환경보호를 위한 그린벨트법이 발효되면서 많은 기도원이 철거되었다.
이러한 조처로 기도원운동은 양상이 달라져서 영락교회의 영락기도원, 순복음교회의 순복음금식기도원과 같은 수양관 형태의 각 교회의 기도원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기도원의 유형은 성격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교회나 교회기관에서 운영하면서 필요에 따라 수양회·수련회·특별집회를 가지는 기도원이다. 이 가운데에는 초교파적으로 운용되는 기도원도 있다.
둘째, 기업적으로 일년내내 부흥사를 초청하여 부흥집회를 열고 현금수익은 부흥사와 일정배분하는 기도원이다. 셋째, 기도원이라는 명칭하에 주로 정신병자를 수용하고 환자보호자로부터 응분의 대가를 받아내는 기도원이다.
넷째, 외관상으로는 기도원이나, 종단의 체계를 갖춘 기도원이다. 이는 신종교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일시적인 성장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기도원들은 개인의 신앙적 측면에서는 긍정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나, 제도종교 쪽에서 볼 때는 도전세력이 되기도 한다. 종교사의 측면에서는 기독교가 우리 나라의 문화전통과 만나는 중요한 장소로도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