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보천교가 60방주라는 전국교구를 갖추고 수십만 신도를 확보함에 따라, 교주 차경석(車京錫)은 이러한 교세확장을 기반삼아 천자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1921년 교명을 보화교(普化敎)로 바꾸고 ‘시국(時國)’이라는 국호를 선포하여, 신세계의 조화정부건설을 꾀했다. 이때 보천교 본부건설을 위해 많은 노동자가 필요하였고, 이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기산조합이 형성되었다.
공식적으로는 대흥리 노동자들에게 편익을 주고 직조 등의 수공업을 통해 산업진흥을 꾀하는 자치기구라고 하지만, 1924년의 갑자년은 천자등극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위의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또한, 기산조합장에 이름난 장사 서상근이 선임된 것을 보더라도, 당시 차경석의 천자등극에 반대하면서 일부 보천교 간부들이 개혁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가 일종의 근위대로 이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이 기산조합은 일종의 노동보급대 및 신변호위대 성격을 가미한 노동조합적 성격을 띠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때 각 부서까지 조직되기도 하였으나 곧 유명무실해진 것은 서상근이 1924년 8월 보천교 혁신운동에 참여하기 위하여 상경함에 따라 자연 소멸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