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를 숭배하고 신학(新學)을 철저히 배격하는 태극교(太極敎)를 모체로 하여 설립되었는데, 김창한(金彰漢)이 창립대표였다.
창립목적은 “동양도덕정신을 고취하고 쇠미해져가는 유림의 기풍을 바로 세우며 청년들에게 유교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경성(京城)에 본부를 두었으며, 군산(群山)·단천(端川)·수하(水下)·용원(龍源)에 지원(支院)이 있었다.
그러나 경성본원은 곧 유명무실해지고 군산지원도 1년이 못 되어 소멸해 버렸기 때문에, 단천을 중심으로 한 함경도에서만 상당기간 존속하고 있었다. 입교하여 임원이 되면 지방관혼상제 행사 때 상석을 차지하게 되는 등 지역사회의 유지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과거 양반이 누리던 특권적 지위를 누리기 위하여 임원 개선 때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단체는 지역 서민들로부터 커다란 환영을 받아 1934년 8월 당시 남자신도만 약 2,500명 가량 있었다고 하는데, 임원만 되면 양반이 누리던 특권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 같다. 때문에 임원선발 때 가산을 탕진하는 등 폐해도 속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