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원

  • 종교·철학
  • 단체
  • 일제강점기
1930년에 서울에 설립되었던 유교개혁운동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승용 (서울대학교, 종교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김포 대성원 전경 미디어 정보

김포 대성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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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0년에 서울에 설립되었던 유교개혁운동단체.

내용

공자(孔子)를 숭배하고 신학(新學)을 철저히 배격하는 태극교(太極敎)를 모체로 하여 설립되었는데, 김창한(金彰漢)이 창립대표였다.

창립목적은 “동양도덕정신을 고취하고 쇠미해져가는 유림의 기풍을 바로 세우며 청년들에게 유교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경성(京城)에 본부를 두었으며, 군산(群山)·단천(端川)·수하(水下)·용원(龍源)에 지원(支院)이 있었다.

그러나 경성본원은 곧 유명무실해지고 군산지원도 1년이 못 되어 소멸해 버렸기 때문에, 단천을 중심으로 한 함경도에서만 상당기간 존속하고 있었다. 입교하여 임원이 되면 지방관혼상제 행사 때 상석을 차지하게 되는 등 지역사회의 유지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과거 양반이 누리던 특권적 지위를 누리기 위하여 임원 개선 때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단체는 지역 서민들로부터 커다란 환영을 받아 1934년 8월 당시 남자신도만 약 2,500명 가량 있었다고 하는데, 임원만 되면 양반이 누리던 특권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 같다. 때문에 임원선발 때 가산을 탕진하는 등 폐해도 속출하였다.

참고문헌

  • - 「일제기(日帝期) 한국유교개혁(韓國儒敎改革)의 동향(動向)」(정규훈, 『정신문화연구』, 1985. 여름호)

  •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조선총독부,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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