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30년에 서울에 설립되었던 유교개혁운동단체.
내용
창립목적은 “동양도덕정신을 고취하고 쇠미해져가는 유림의 기풍을 바로 세우며 청년들에게 유교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경성(京城)에 본부를 두었으며, 군산(群山)·단천(端川)·수하(水下)·용원(龍源)에 지원(支院)이 있었다.
그러나 경성본원은 곧 유명무실해지고 군산지원도 1년이 못 되어 소멸해 버렸기 때문에, 단천을 중심으로 한 함경도에서만 상당기간 존속하고 있었다. 입교하여 임원이 되면 지방관혼상제 행사 때 상석을 차지하게 되는 등 지역사회의 유지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과거 양반이 누리던 특권적 지위를 누리기 위하여 임원 개선 때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 단체는 지역 서민들로부터 커다란 환영을 받아 1934년 8월 당시 남자신도만 약 2,500명 가량 있었다고 하는데, 임원만 되면 양반이 누리던 특권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였던 것 같다. 때문에 임원선발 때 가산을 탕진하는 등 폐해도 속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기(日帝期) 한국유교개혁(韓國儒敎改革)의 동향(動向)」(정규훈, 『정신문화연구』, 1985. 여름호)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조선총독부,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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