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상사(上巳 : 음력 3월상순의 巳日, 혹은 3월 3일)와 중양(重陽 : 9월 9일)에 보제루(普濟樓)에서 큰 잔치를 열었다. 기로연에는 정2품의 실직(實職)을 지낸 70세 이상의 문과출신 관원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종친(宗親)으로 70세에 2품 이상인 자, 정1품관, 경연당상관들을 위하여는 훈련원이나 반송정(盤松亭)에서 기영회(耆英會)라는 잔치를 베풀었다. 이들 잔치에는 왕이 술과 1등급 풍악을 내렸다. 조선시대의 기로연은 1394년(태조 3) 한양천도 후 태조 자신이 60세의 나이로 기로소에 들어가면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늙은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푼 것이 처음이었다.
태조는 또 잔치비용 마련을 위하여 토지·노비·염분(鹽盆) 등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이 잔치는 예조판서가 주관하여 준비하였고, 왕명을 받은 승지가 특별히 파견되어 감독하였다. 잔치에 참가한 문신들은 먼저 편을 갈라 투호(投壺)놀이를 한 뒤, 진 편에서 술잔을 들어 이긴 편에 주면 이긴 편에서는 읍하고 서서 술을 마시는데, 이 때 풍악을 울려 술을 권하였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면 본격적인 잔치를 열어 크게 풍악을 울리고 잔을 권하여 모두 취한 뒤에 파하였고, 날이 저물어야 서로 부축하고 나왔다. 태조·숙종·영조와 고종과 같이 나이 많은 왕들은 직접 이 잔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기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