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

  • 역사
  • 제도
  • 고려 전기
고려·조선시대 중앙정부에서 서울의 각 관서 및 지방관서에 발하는 일체의 통신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통문 / 기별 미디어 정보

통문 / 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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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조선시대 중앙정부에서 서울의 각 관서 및 지방관서에 발하는 일체의 통신문.

내용

조보(朝報)·저보(邸報)·통문(通文) 등이 있었으나, 보통은 조보를 지칭하였다. 조보를 필사하는 서리를 ‘기별서리(寄別書吏)’라 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군사를 ‘기별군사’라 하였다.

조보는 조지(朝紙)·난보(爛報)라고도 하였는데, 승정원에서 매일 재가된 법령이나 교명, 기타 공지사항들을 수록하여 내외·대소의 각 관아에 통지하는 일종의 관보(官報)였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행하여졌으나 조선시대에 더욱 발달하여 보편화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예문춘추관에서 작성하여 배부하였으나, 세조 때부터 승정원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지방에 보내는 조보는 대개 5일치를 묶어 한 봉투에 넣어 발송하였다.

그리고 저보는 경저리(京邸吏)들이 자신들의 고을 관아에 보내는 통지문으로 신관의 부임소식 등을 알렸다. 그리고 통문은 서원·향청·문중(門中) 등에서 공동관심사를 통지하는 문서였다. 그 뒤 통신제도가 발달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통신문들도 기별로 불리게 되었다.

참고문헌

  •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 『한국고문서연구(韓國古文書硏究)』(최승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 - 『한국신문사(韓國新聞史)』(최준, 일조각,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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