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병대

  • 역사
  • 제도
  • 개항기
근대 개항기에 설치된 기마부대.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문섭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기병정위 예복 미디어 정보

기병정위 예복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근대 개항기에 설치된 기마부대.

내용

1895년(고종 32)에 창설되어 참령(參領)이 주관하였다. 1894년에 신식군대인 훈련대(訓鍊隊)가 조직되었으나, 이에 편입되지 못한 구식군대를 중심으로 13개의 신설대(新設隊)가 편성되었는데, 이 가운데 3대가 마병(馬兵)으로 편제되었고, 이 마병이 이듬해에 기병대로 개편되었다.

마병 3대는 2개 대대로 편제되었고, 장교 70명, 병졸 8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중앙군의 후비군(後備軍)에 속하였다. 그러나 기병대는 을미사변 이후 훈련대가 친위대(親衛隊)로 개편되면서 이에 흡수되어 폐지되고, 1896년 친위대 안에 친위기병중대와 치중마병대(輜重馬兵隊)로 재편성되었다.

더욱이 궁성호위를 목적으로 설립된 시위대(侍衛隊)가 1897년에 증강되자 마침내 기병대도 1900년(광무 4)에는 시위대에 예속되었다. 여기에서 시위기병대대로 발전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우리 나라 최초로 독립부대로서 근대적 기병대로 개편된 것이다.

기병대대는 4개 중대로 이루어졌고, 1개 중대는 4개 소대로 편제되었으며, 참령인 대대장을 비롯하여, 장교 80명과 병졸 328명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1개 군악소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기병대대는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에 의해 1개 중대로 감축되었으며, 1개 소대로 잔존했던 군악소대도 폐지되었고, 마침내 1907년 일본의 강제군대해산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참고문헌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순종실록(純宗實錄)』

  • - 『한국군제사(韓國軍制史)』-근세조선후기편(近世朝鮮後期篇)-(육군본부, 1977)

  • -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1(송병기 외, 국회도서관, 1970)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