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 법견(15521634)은 임진왜란 때 의승군을 일으킨 청허 휴정(15201604)의 제자이다. 그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출신으로 호남에서 뇌묵 처영(雷默處英)에게 출가했다. 지리산에서 휴정의 법을 이었으며, 사형인 사명 유정(1544~1610)에게도 배웠다. 임진왜란 때 승장으로 활동하며 전라남도 장성 입암산성을 쌓고, 그 성의 수호를 담당하는 총섭으로 활동하였다. 지리산, 구월산, 묘향산, 금강산 4대 산을 두루 돌아다녔으며, 만년에는 금강산에 많은 절을 세웠다.
이민구가 쓴 서문에는 '불교는 적멸(寂滅)을 중시하고 비평과 성률(聲律)은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시문을 통해 근기가 드러나기 때문에 시에 뛰어난 승려가 끊이지 않았다'라고 하면서 제자 경운(慶雲)이 법견의 시문을 가지고 와 품평을 청한 사실이 적혀 있다. 또한 법견의 시가 '깊이 있고, 품격 높으며, 의리(義理)가 있으며, 문장이 순후(淳厚)하고 식견이 넓다'고 평가했다.
『기암집』 권1에는 5언 절구와 7언 절구, 율시(律詩) 등 시 105편 119수가 실려있다. 이 시 중에는 승려뿐 아니라 이식(李植), 이명한(李明漢) 등 이름난 유학자나 관료들과 교환한 시가 적지 않다. 법견이 쓴 「염불관(念佛觀)」은 여러 사찰 전각의 주련(柱聯))에 새겨질 정도로 널리 알려진 시이다. 권2에는 상량문 1편과 소문(疏文) 18편, 총 19편이 실려 있는데, 이 글 중에서 「금강산 유점사 법당 상량문」, 「서산(西山)대화상 기신재소(忌晨齋疏)」, 「송운(松雲)대사 백재소(百齋疏)」 등이 주목받는 작품이다. 권3에는 권선문, 모연문(募緣文), 발문, 중창기(重創記) 등 모두 23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법견의 글 중 「임진년 강화부 주총통급탄자(鑄銃筒及彈子) 권선문」은 임진왜란 때 강화도에서 총통과 탄환을 제작한 사실, 강화 해변 포루(砲樓)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이밖에도 「장안사 법당 권선문」, 「유점사 천왕문 권선문」, 「표훈사 해회당 권선문」 등 주로 금강산 일대 사찰들의 중창과 관련된 글이 많다. 이 절들 중에는 왕실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불사도 확인된다.
또 「금강산 백화사(白華寺) 입비발기(立碑跋記)」에서는 휴정의 제자 언기(彦機)와 쌍흘(雙仡)이 문장으로 이름난 이정구(李廷龜)의 글과 선조의 부마 신익성(申翊聖)의 글씨를 받아 스승의 비를 세운 내력을 적었다. 이 비문을 통해 고려 말 태고 보우(太古普愚)가 중국에서 들여온 임제종의 법맥을 휴정이 이어받았다는 법통설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법견은 그러한 내용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묘향산 보현사와 금강산 백화암에 스승 휴정의 비가 세워졌음을 강조했다.
『기암집(奇巖集)』은 임진왜란과 그 이후의 불교 신앙, 수륙재(水陸齋) 등 의례의 실행 양상, 중창불사(重創佛事)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는 역사 기록물로 가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