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자민(子敏), 호는 백석(柏石).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기윤진(奇允鎭),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생원 박종한(朴宗漢)의 딸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67년(고종 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정언·예조정랑을 지냈다. 이듬해에 지평, 1869년 장령, 1873년 사복시정(司僕侍正)을 지내고,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집상하였다. 1878년 다시 장령을 거쳐 부교리·부수찬을 역임하였다.
이때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일본의 침탈이 본격화되자, 삼정책(三政策)의 상소를 올리고 나서 고향에 은거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본군에 의해 좌절되고 일제의 가세가 강성해지자, 집안식구들과 지리산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기양연은 학문적인 연구보다는 척사위정의 정신에 투철하였다. 저서로는 『백석헌유집(柏石軒遺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