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의 저서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3 영처문고(嬰處文稿) 1에 실려 있다. 체재는, 자서(自序)에 해당하는 머릿말이 있고, 이어서 자신이 유람한 북한산의 사찰과 암자·정자·누각 등을 하나하나 서술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내용은 작자가 남복수(南復秀)·남홍래(南鴻來) 등과 더불어 2일 동안 끼니를 걸러가면서 서울에서 가까운 백제의 고도(古都)를 답사한 것이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을 답사하였으나, 하나의 암자와 봉성사(奉聖寺)·보국사(輔國寺)는 유람하지 못하였다.
열네 군데의 고적을 유람하면서 작자는 정자나 누(樓) 등의 유래와 특징 등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들이 찾아간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쓴 것이다.
이들의 유람경로는 세검정(洗劍亭)·소림암(小林庵)·문수사(文殊寺)·보광사(普光寺)·태고사(太古寺)·용암사(龍巖寺)·중흥사(重興寺)·산영루(山映樓)·부왕사(扶旺寺)·원각사(圓覺寺)·진국사(鎭國寺)·상운사(祥雲寺)·서암사(西巖寺)·진관사(津寬寺)의 순이다.
즉, 문수문(文殊門)으로 들어가서 산성 서문으로 나온 셈이다. 시기는 1761년(영조 37) 9월 30일에서 10월 1일로 작자의 나이 21세 때이다. 이 글의 특징은 간략한 서술기법에 있다. 또한 작자의 백과전서적인 기록취미가 나타나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