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한문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 글은 설암이 묘향산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를 샅샅이 누비면서 자세히 쓴 글이다.
묘향산은 장백산(長白山)의 지맥으로 압록강 남쪽 언덕과 평양부(平壤府)의 북쪽에 있어서 요동(遼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이 높고 큰 것이 비길 데가 없다. 땅에는 향나무가 많아서 겨울에도 푸르러 신선과 불도(佛徒)의 옛 자취가 많기 때문에, 묘향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고 설암은 적고 있다.
묘향산에는 동방에서 제일 크다는 안심사(安心寺)가 있다. 고려 때에 황주(黃州)고을 사람인 승려 탐밀(探密)이 지조가 몹시 곧고 운치가 높아서 세속을 저버리고 도승들의 참된 발자취를 탐구하였다. 그러다가 묘향산에 와서 암자를 지었다. 이것이 지금의 안심사이다.
안심사 남쪽에 불영대(佛影臺)가 있다. 이 대에는 예전에 우리 국조사실(國朝史實)을 비장해두었던 각(閣)이 있었으나 병자·정묘 두 난리 후에 나라에서 도난을 염려하여 오대산으로 옮겨갔다고 하였다.
단군대(檀君臺)는 3, 4인이 앉을 만하고, 그 옆에 석굴이 있다. 석굴은 바위가 벌어져서 저절로 문이 되었고 그 속은 마치 방과 같아서 완전히 철당(鐵堂)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檀君)이 내려온 곳이라 하여 나무로 난간을 만들어 표시해놓고 있다고 하였다.
이황(李滉)의 필적이 있는 향산운사(香山雲寺)는 이황이 휴정(休靜)을 위해서 써준 것이라 한다. 또, 원효암(元曉庵) 곁에 있는 석가씨팔상전(釋迦氏八相殿) 뒤에 석가씨의 사리를 간직한 석탑이 있고, 그 사적을 기록한 비석은 전면은 휴정이 쓰고 후면은 유정(惟政)이 썼다고 하였다. 그밖의 수없이 많은 암자나 봉우리들은 일일이 소개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설암은 아름다운 꽃은 시들지 않고 향기로운 풀은 언제나 봄철인 도원(桃源)·현포(玄圃)·방장(方丈)·봉래(蓬萊)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나, 이 땅은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산이라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라고 하였다.
이 글은 승려가 썼으므로 절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다. 그리고 묘향산을 자세하게 그린 글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