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본의 간행 시기는 “때는 가정 기원 32년 초가을 보름 뒤 삼일이다[時嘉靖紀元之三十二年孟秋望後三日].”라고 기록되어 있어 1553년 7월 18일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발문은 “문인 교서관 별제 신확이 삼가 백번 절하고 글을 씁니다.[門人校書館別提申濩謹百拜以書]”라고 기록되어 있어 신확이 썼음을 알 수 있다.
목판본과 필사본 모두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 · 「서재야회록(書齋夜會錄)」 ·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 · 「하생기우전(何生奇遇傳)」 네 편을 차례로 수록하고 있다.
한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 『수성지(愁城志)』에 「서재야회록」 · 「안빙몽유록」 · 「최생우진기」 세 편이 첨부, 필사되어 있다. 『필사본고전소설전집』 권 3에 「안빙몽유록」이 재수록되어 있고, 임명덕 편 『한국한문소설전집』 권 9에 「최생우진기」가 재수록되어 있다.
「안빙몽유록」은 주인공 안빙이 꿈 속에서 꽃의 나라를 유람하고 돌아온 이야기이다. 「서재야회록」은 주인공이 서재에서 문방사우와 노닌 이야기이다. 「최생우진기」는 주인공 최생이 수부(水府)의 잔치에 참여하여 신선들과 노닌 이야기이다. 「하생기우전」은 주인공 하생이 무덤 속에서 죽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살려내어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기재기이』는 신광한 자신의 신변을 소재로 한 창작집이다. 신광한은 37세에 삼척부사에 자원하여 두타동천(頭陀洞天)을 자주 찾아 풍류를 즐겼다. 두타동천이 있는 두타산은 「최생우진기」의 배경이 된다. 41세에는 여주 원형리에서 결복(闋服)할 동안 서재를 짓고 서책을 벗 삼아 여러 해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서재야회록」이 서재를 배경으로 서술된 것은 이 시기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말년에는 낙봉정사(駱峯精舍)에 독서당을 짓고 가지가지 수목과 화초를 심고 즐기다가 죽었다. 「안빙몽유록」이 이 화원을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발문을 보면, 소설들이 이미 필사되어 향유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확과 그의 친구 조완벽(趙完璧)이 “스승이 쓴 『기재기이』가 비록 도덕적 교훈서는 아니지만, 스승의 인품이 드러난 것이니 별도 간행하여 후학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려 한다.”라고 한 것을 보면 소설에 대한 당시의 관심을 엿볼 수 있다.
15세기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와 17세기 전기소설의 흥성기(興盛期)의 사이에 위치한 16세기 전기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