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생우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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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기이 / 최생우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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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
작품
조선 중기에 신광한(申光漢)이 지은 한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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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신광한(申光漢)이 지은 한문소설.
개설

「최생우진기」는 삼척의 두타동천(頭陀洞天) 무릉계곡을 배경으로 주인공 최생의 신선체험을 허구화한 것이다. 목판본은 1553년(명종 8)에 간행된 고려대학교 만송문고(晩松文庫) 소장본 『기재기이(企齋記異)』에 「안빙몽유록(安憑夢遊錄)」·「서재야회록(書齋夜會錄)」·「하생기우전(何生奇遇傳)」와 함께 실려 있다. 필사본은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 소장본 『기재기이』에 실려 있다. 규장각 도서 『수성지(愁城志)』에 「수성지」와 함께 필사된 것이 있다.

내용

강릉의 최생이라는 선비는 일찍 속세를 등지고 증공선사(證空禪師)와 더불어 두타산 무주암(無住菴)에서 은거하고 있었다. 하루는 청낭비결(靑囊秘訣)을 읽다가 동천으로 들어가면 선계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선사의 말을 실천해 보기로 하였다.

증공선사는 최생과 함께 동천에 들어갔다가 문득 최생을 잃고 돌아왔다. 몇 달 후에 홀연 최생이 학(鶴)을 타고 날아와 자신의 신선체험을 이야기하였다.

최생은 그 때 용추동굴(龍湫洞窟)을 통하여 수부(水府)에 들어가 조종전(朝宗殿)의 청령각(淸泠閣)으로 안내되었다. 그 곳에는 동선(洞仙)·도선(島仙)·산선(山仙)의 삼선이 초대되어 있었다. 최생은 그들과 함께 현부인(玄夫人)·개사(介士)의 노래와 춤으로 즐겁게 지냈다.

최생은 용왕의 권유로 용궁회진시(龍宮會眞詩) 30운(韻)을 써서 서로 화답하였다. 최생이 용궁에 관심을 보이자 동선은 자신도 인세(人世)에서 왔음을 말하였다. 그는 최생에게 목숨을 연장하는 선약(仙藥)을 주며 10년 후에 봉래도(蓬萊島)에서 만날 약속을 하고 작별하였다.

최생이 대문을 나와 학을 타고 무주암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미 수개월이 경과하였다는 것이다. 최생은 그 뒤에 세속에 관심을 두지 않고 생활하였다. 그 마친 바를 알지 못하였다.

「최생우진기」는 『금오신화』의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과 흡사하다. 「용궁부연록」에서는 천마산(天磨山)의 용추(龍湫)·박연(朴淵)이 용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개성의 한생(韓生)이 용왕의 초대객과 함께 구경한 조원루(朝元樓)·능허각(凌虛閣)과 가무에 참여한 곽개사(郭介士)·현선생(玄先生)의 등장도 이 소설과 비슷하다.

「용궁부연록」은 한생이 사자의 등에 올라 물을 헤치고 나와 눈을 떠보니 집에 누워 있었고 「최생우진기」는 최생이 용궁 출입과정에서 학을 탄다는 것이 다르다. 「최생우진기」의 최생은 실의한 선비이고 짙은 신선사상이 엿보이는 점이 「용궁부연록」과 다르다. 그리고 이 소설은 「용궁부연록」과는 달리 무주암에 거주하는 증공의 이야기로 구성이 전개되고 있다.

참고문헌

「신광한(申光漢)의 기재기이(企齋記異)」(소재영, 『숭실어문』3, 숭실대학교국어국문학과, 1986)
「기재기이(企齋記異)의 한 연구(硏究)」(소재영, 제29회국어국문학발표대회요지, 19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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