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학(程朱學)의 개념구조에 의하면 ‘본연의 성’은 이(理)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흠이 없고 순수한데, ‘기질의 성’은 기(氣)에서 생기는 것이기에 ‘통함과 막힘[通塞]’, ‘치우침과 바름[偏正]’의 차별이 생기게 된다. 이때 바르고 통한 기를 얻은 것이 사람이며, 치우치고 막힌 기를 받으면 사물이 된다. ‘통(通)’에도 청탁의 차이가 있으며, ‘정(正)’에도 미악(美惡)의 구별이 있는데, ‘청’한 이는 지혜롭고, ‘탁’한 이는 어리석으며, ‘미’한 이는 어질고, ‘악’한 이는 불초하게 된다. 이런 차이는 음양과 오행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편차이다.
음양오행의 운동과 변화에는 태극(太極)이라는 이(理)가 산재하여 있기 때문에 기질의 성에도 본연의 성이 갖추어져 있다. 기질로 인해 때로는 욕망[人欲]에 가려지고 때로는 개인적인 품성[氣禀]에 제약을 받지만, 그 본체의 밝음은 상존하므로 누구나 요순 같은 완전한 도덕적 인격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기’가 맑고 ‘질’이 순수한 경우에는 힘쓰지 않아도, 능히 지행(知行)하는 것이 가능하다. 기가 맑은데 질이 잡되고 순수하지 못하면 지(知)에는 능하지만 행(行)에는 능할 수 없으니, 성실하고 돈독하게 실천에 힘써야 한다. ‘질’은 순수한데 ‘기’가 탁한 사람은 ‘행’에는 능하지만 ‘지’에는 능하지 못하니, 성실하고 정치(精緻)하게 학문에 노력하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기질을 변화시켜 본연의 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철학적 논란은 이 기질지성과 본연지성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 주희(朱熹)는 한편으로 “천리(天理)가 기질에 떨어져 기질지성을 이룬다. 그러니 기질지성과 독립된 본연지성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순수한 도덕적 본성을 기질이 흐려놓았다.”고 말해 얼핏 보아 엇갈린 주장을 펴서 논쟁의 발단을 마련했다.
이황(李滉)은 서경덕(徐敬德)의 기철학(氣哲學)이 ‘도덕적 자각’의 측면에서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기질의 성과 본연의 성이 별개의 차원이며, 인간은 본연의 성에 입각해 기질의 성을 검속·제재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이(李珥)는 기질의 성을 떠난 본연의 성이 있을 수 없으므로 기질의 ‘순화’가 본연의 성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은 논란은 조선 후기 유학의 쟁점인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그대로 이어졌다. 임성주(任聖周)는 두 차원이 구별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양자가 같은 것이라고 하여, ‘인간성의 전면적 해방’을 긍정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정약용(丁若鏞)은 모든 문제가 인간과 여타 존재간의 존재론적 위상(位相)을 무시하고 동일차원에서 해명하려는 데서 생겼다고 하면서, 기질지성을 인간과 동물이 공유한 신체적 욕구(動·覺·食·色)로 한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최한기(崔漢綺)는 전통적 논법을 받아들이면서 인간의 실질적 내용인 ‘기질’의 발현이 본연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윤리적 과제는 그러한 개성의 발현이 몰고 오는 얽힘을 공동체적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일이라고 해명하여, 근대적 사유의 큰 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