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덕(明明德)은 의미상으로 ‘밝은 덕[明德]을 밝힌다’는 뜻이다. 주희는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질은 맑고 밝으니 이를 명덕이라 하였다고 설명하면서, 이 맑고 밝은 덕이 기품(氣稟)과 인욕(人欲)에 의해 가려져 때로는 혼미해질 수 있으므로,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명덕의 본체를 보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대학』에서 말하는 명명덕과 관련해 『서경』에서는 ‘덕을 밝힐 수 있다[克明德]’,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顧諟天之明命]’, ‘높은 덕을 밝힐 수 있다[克明峻德]’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명명덕의 의미를 강조하기보다는 하늘의 일반적인 덕을 가리키며, 오히려 그것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서경』의 다른 구절에서도 군왕의 덕을 칭송하며 「강고」에서는 ‘능히 덕을 밝히고 형벌을 삼가셨다[克明德愼罰]’라고 하거나, 「재재」에서는 ‘밝은 덕을 써서 회유하고 가까이 하셨다[用明德懷爲來]’라고 하여 명덕을 군왕의 덕성에 대한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 학자들은 명덕을 ‘마음의 덕[心之德]’으로 해석하였다. 예를 들어 김제묵(金齊默)은 「동유경설(東儒經說)」에서 “명덕으로 보면 하늘로부터 얻은 것은 덕이요, 허령불매한 것은 명이다”라고 하였으며, 이진상(李震相)은 「구지록(求志錄)」에서 “작용으로 보면 허령불매는 명덕의 의사(意思)를 형용하는 것이요, 뭇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은 명덕의 체용(體用)을 발휘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이기심성론의 중요한 쟁점으로 명덕을 해석한 것이다.
한편 다산 정약용은 정산 이병휴 등의 영향을 받아 명덕을 효제자(孝弟慈)로 해석하며, 이를 선험적인 원리로 보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덕목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명명덕의 해석에서 도덕의 실천적 요소를 강조한 것으로, 조선 후기 실학적 경향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