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경도(景道), 호는 용산(龍山). 아버지는 기중진(奇重鎭)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로 강항(姜沆)의 후손이다.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으로 부모를 여읜 뒤로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연구에만 전념하였으며, 서예에도 뛰어난 실력이 있었다. 한편, 사도책(師道策)을 지어 당시 교육제도의 폐단을 지적하고, 그러한 폐단을 없애는 방법으로 문벌과 지연의 통일(通門地), 당론의 제거(去黨論), 과거제도의 개혁(革科擧)을 촉구하였다.
자품이 온화하여 혹 잘못이 있어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선도하였다. 말년에는 주서(朱書) 공부에 힘써 『주서표기(朱書標記)』 등을 만들어 실천하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저서로 『용산유고(龍山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