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52년 동부승지(同副承旨), 1554년 형조참의가 되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57년 청홍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이어서 대사헌과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1563년 형조판서, 1564년에는 호조판서가 되었다.
1569년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조광조(趙光祖) 등을 현자로 추대할 때에 조광조를 비방한 사실이 드러나 기대승(奇大升) 등의 탄핵을 받고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시흥으로 낙향하여 있다가 분사하였다. 관직에 있으면서 매우 청렴하여 1552년에 청백리에 녹선(錄選)되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가정4년을유2월21일생원진사시방목(嘉靖四年乙酉二月二十一日生員進士試榜目)』(고려대학교 도서관[만송 貴 379 152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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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마시 급제 : 『가정4년을유2월21일생원진사시방목(嘉靖四年乙酉二月二十一日生員進士試榜目)』(고려대학교 도서관[만송 貴 37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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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六(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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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기대승의 논박 : 『선조실록』 3권, 1569년(선조 2) 6월 9일. "문정전에서 기대승 등이 김개의 말이 소인의 말이라고 논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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