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극기

  • 종교·철학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지월당유고』 등을 저술한 문신.
이칭
  • 예근(禮謹)
  • 지월당(池月堂)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463년(세조 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교리
  • 출생 연도1379년(우왕 5)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지월당유고』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예근(禮謹), 호는 지월당(池月堂). 부정(副正) 김삼성(金三省)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0세에 시를 지어 세인을 놀라게 하였으며, 특히 이숭인(李崇仁)의 총애를 받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고려가 망한 뒤로는 유세(遺世: 세상일을 잊음)의 뜻을 가져 거업(擧業)에 힘쓰지 아니하고 이름난 산수를 찾아 시작(詩作)으로 소일하였다. 문명으로 이름이 나자 태종 때 윤상(尹祥)의 천거로 남대(南臺)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다가 그 뒤 부득이 한번 나아갔다가 바로 그만두었다.

세종 때는 그의 고명(高名)을 듣고 교리(校理)로 부르고 역마까지 보냈으나 세 번이나 거절하는 상소를 올리자 은명(恩命: 임금이 내리는 임관명령)을 끝내 거절한다 하여 북도(北道) 우후(虞侯)에 좌천시키므로 하는 수 없이 임지로 향하였다.

북변(北邊)에 있으면서 그의 시작(詩作)은 한층 더 깊이를 더하게 되었다. 곧 이어 제주목사로 특승되었으나 사직상소를 간절하게 올려 돌아가 쉬도록 특전을 받았다. 그는 평장동(平章洞)에 정자를 짓고 ‘池月(지월)’이란 편액을 달고 자연과 벗하며 시로써 일생을 보냈다.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그의 시는 100편이 넘는다. 삼현사(三賢祠)에 봉안되었으며, 저서에는 『지월당유고(地月堂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 - 『동문선(東文選)』

  •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지월당유고(地月堂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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