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병조판서, 춘천유수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77년 총융사 · 무위도통사 · 통제사 · 금위대장 · 강화부유수 등을 거쳐, 1882년 임오군란 때에는 흥선대원군이 다시 집권하면서 복설한 삼군부(三軍府)의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에 중용되었다. 1884년에는 수원부유수를 거쳐, 같은 해 새로이 설치된 친군영(親軍營)의 우영사(右營使) · 별영사(別營使)를 역임한 뒤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1886년 해방총관이 개칭된 해방영사(海防營使)를 거쳐, 1888년 춘천유수를 지냈다.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참고문헌
- 『철종실록(哲宗實錄)』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금구록(金甌錄)』
- 『청선고(淸選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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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지삼군부사 임명 : 『고종실록』 19권, 1882년(고종 19) 8월 8일. "중궁전을 맞이할 때 배종한 대신 이하에게 시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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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시호 추증 : 『고종실록』 29권, 1892년(고종 29) 8월 4일. "김병덕 등 11명에게 시호를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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