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직재(直齋). 평안북도 안주 출생.
1905년 황해도 평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예성강유역에서 항일전투를 전개하다가 일본군의 추격을 피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조맹선(趙孟善)·박장호(朴長浩)·백삼규(白三圭) 등과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을 조직하고 사한원(司翰員)으로 활동하였다.
이해 11월 독립단의 국내지단 결성과 군자금모금의 사명을 띠고 국내로 잠입하여 먼저 황해도 해주에서 지단 조직에 착수하고, 1920년에는 평남지단(平南支團)과 군단(郡團) 조직을, 7월에는 평북지단과 군단을 결성하였다.
그 뒤 서울에 잠입하여 중앙본부를 결성하고 단원들을 포섭, 군자금모금 활동을 전개하던 중 발각되어 잡혔다. 1921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언도받고 복역중 일본경찰의 악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