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지중(止中), 호는 유당(柳塘). 한성의 신성촌(新成村)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계공랑(啓功郎) 김진(金璡)이며, 어머니는 강릉진씨(江陵陳氏)로 생원 진담(陳霮)의 딸이다.
1547년(명종 2) 양재역(良才驛) 벽서사건으로 안변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백인걸(白仁傑)을 찾아가서 스승으로 섬겼다. 학문이 크게 진전되어 명성이 높았으므로 함경도관찰사인 김광진(金光軫)이 맞이하여 자질을 교육시켰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했다.
처음 도시(道試)에 장원하여 전시(殿試)에 나가고자 하다가 어머니의 병으로 나가지 못했다. 158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85년 영흥훈도에 임명되고, 이듬 해에 성균관박사를 지내고 곧이어 전적이 되었다. 1588년 승문원교검·교리·응교·수찬 등을 역임했다.
그 뒤 명천현감과 김화현감을 지내면서 많은 인재를 육성하고 풍속을 바로잡아 선정을 베풀었다. 어사의 보고로 군자감판관에 승차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군대를 거느리고 김응서(金應瑞)와 진두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기록되고 청백리에 뽑혔다.
1603년 주사대장(舟師大將)·담양부사 등을 역임하고, 1611년 (광해군 3) 공조참의가 되었다. 1612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듬 해 병조참판·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유당집(柳塘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