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유당집』 등을 저술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처음 도시(道試)에 장원하여 전시(殿試)에 나가고자 하다가 어머니의 병으로 나가지 못했다. 158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85년 영흥훈도에 임명되고, 이듬 해에 성균관박사를 지내고 곧이어 전적이 되었다. 1588년 승문원교검 · 교리 · 응교 · 수찬 등을 역임했다.
그 뒤 명천현감과 김화현감을 지내면서 많은 인재를 육성하고 풍속을 바로잡아 선정을 베풀었다. 어사의 보고로 군자감판관에 승차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군대를 거느리고 김응서(金應瑞)와 진두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기록되고 청백리에 뽑혔다.
1603년 주사대장(舟師大將) · 담양부사 등을 역임하고, 1611년 (광해군 3) 공조참의가 되었다. 1612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이듬 해 병조참판 ·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유당집(柳塘集)』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유당집(柳塘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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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진사 급제 : 『만력4년병자2월16일사마방목(萬曆四年丙子二月十六日司馬榜目)』(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김천 성산이씨 양계 이하(陽溪李𩡘) 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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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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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김니 저술 : 『유당집(柳塘集)』 (국립중앙도서관 古364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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