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이에 비분하여 의거하였다.
청송 주왕사(周王寺)와 울진 불영사(佛影寺)에서 이현규(李鉉圭)와 함께 경상도·강원도지방의 의병 500여 명을 모아 무술훈련을 실시하고, 1906년 2월에 경상북도 영양군 입암면의 교동에 있는 자택에서 의진을 구성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 때 도포장(都砲將)으로 선임되었으며, 그 해 4월 진보의 오루저수지에서 일본헌병 부토[武藤] 이하 1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5월에는 울진·죽변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11월에는 안동 임동면과 영양 입암면의 접경 산악지대에서 활동하다가 적의 방화로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