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주견(疇見). 호는 익와(益窩). 영천 환귀리(永川還歸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김운(金澐), 어머니는 경주이씨(慶州李氏)로 이배원(李培元)의 딸이다. 이종상(李鐘祥)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재예가 뛰어나 12·3세에 경사(經史)를 배워 통했으며, 향시(鄕試)에 여러 번 합격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정시(庭試)에 나가지 않았다. 친상(親喪)을 당해서는 효성을 다해 비와 눈이 많이 와도 성묘(省墓)를 폐하는 일이 없어 산을 지키는 사람이 겨울에 숯을 피워 기다렸으므로 효탄소(孝炭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집에 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니 배우기를 청하는 사람이 문전에 가득했다. 1888년(고종 25) 관찰사(觀察使)가 효렴(孝廉)으로 천거했으나 병을 칭탁하여 나가지 않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학자가 필요하다고 보아 후학 교육에 전념했다.
서양과 통상이 이루어져서 기독교(基督敎)가 성행하자 풍속을 해치는 사교로 단정하여 앞장서서 배척했고, 권주욱(權周郁)·이종로(李宗魯) 등과 척사회(斥邪會)를 만들어 활약했다. 저서로는 『익와집(益窩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