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 역사
  • 인물
  • 대한제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연합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독립신문 배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김상옥(金尙玉), 김상옥(金相沃)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69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1년(고종 38)
  • 출생지평안북도 선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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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청년단연합회, 흥사단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독립신문 배포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김상옥(金尙玉·金相沃). 평안북도 선천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월 1일 선천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평양감옥에서 6개월 간 복역하였다.

그해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운동단체인 대한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였으며, 이 연합회 지령으로 국내에 잠입하여 의주∼선천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포고문·경고문·『독립신문』 등을 각지에 배부하는 한편, 독립운동자금 모금운동에 헌신하던 중 일본경찰에 다시 잡혀 징역 8년의 선고를 받고 서울과 평양에서 복역하였다.

복역 중 일본경찰의 악형으로 등골뼈의 골절상을 입었다. 1928년 출옥한 뒤 동지 백여범(白汝範)과 같이 중국 광둥[廣東]으로 탈출하여 그곳에서 채원개(蔡元凱)·강창제(姜昌濟) 등과 같이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9년 흥사단에 가입하였으며, 1930년에는 푸젠성샤먼시[福建省廈門市]에서 이강(李剛)·유수인(柳樹仁) 등과 중국학생구국연맹을 결성하여 중국학생들에게 항일운동을 지도하였다. 1937년 국내 항일공작의 사명을 띠고 대만·일본을 경유하여 부산에 도착한 뒤 선천(宣川)으로 잠입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수개월간 취조를 받았으나 위기를 모면하여 거주제한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1939년 또 다시 국내를 탈출하여 중국으로 가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광복 이후 교포들의 귀국편의를 위하여 헌신하다가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신재홍, 한국민족운동연구소, 1971)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 「제73회제국의회설명자료(第73回帝國議會說明資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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