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배달옹(裵達翁), 또는 김달(金達). 경상남도 양산 출신.
1918년 중앙학교(中央學校)의 신상완(申尙玩)·김법린(金法麟)·정병헌(鄭秉憲) 등과 유심회(唯心會)를 조직, 민족사상고취와 불교연구를 하다가, 1918년 11월경 한용운(韓龍雲)의 교도를 받아 민족운동을 하게 되었다.
1919년 2월 28일 서울 계동 한용운의 집에서 3·1운동 거사에 필요한 인쇄물을 받아 밤을 새워 살포하고, 다음 날 3·1운동에 참여하였다. 그 뒤 바로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안창호(安昌浩) 밑에서 활동하다가, 군자금모금의 사명을 띠고 입국한 뒤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2월경 김태치(金太治)로부터 915원을 모금하여 조선지도를 사서 독립운동계획 수립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임시정부에 자금과 함께 부쳤으며, 그 뒤에도 계속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검거되었다. 1921년 3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