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휴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예문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계용(季容)
초천(蕉泉)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57년(영조 33)
사망 연도
1827년(순조 27)
본관
광주(廣州)
주요 관직
이조판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예문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계용(季容), 호는 초천(蕉泉). 김만근(金萬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진륜(金鎭崙)이고, 아버지는 김무택(金茂澤)이며, 어머니는 윤득영(尹得永)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3년(순조 3) 증광 문과에 갑과로 주1 홍문록에 주2. 이듬해 교리(校理)로서 강화부안핵어사(江華府按覈御史)로 나아가 강화부 중군 이만원(李晩遠)의 불법을 주3

1805년 시독관으로 『강목(綱目)』을 강독하면서 임금에게 선악을 밝게 할 것을 아뢰었다. 이듬해 수찬(修撰)이 되었으며, 1807년 응교(應敎)가 되었다. 이듬해 공충우도(公忠右道: 현재 충청도의 일부)의 암행어사가 되어 관할 지역의 목사 · 군수 등이 백성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다는 장계(狀啓)를 임금에게 주4

1810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그 공로로 1812년 가의대부(嘉義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1817년 강화부유수, 1819년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 · 대사간이 되었으며, 1822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824년 형조판서 · 좌부빈객(左副賓客) · 의정부좌참찬 등을 거쳐, 이듬해 판의금부사, 1826년 예문관제학 ·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주1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주2

홍문록 등재 : 『순조실록』 5권, 1803년(순조 3) 12월 6일. "강세륜·이영하·임백희·김계온·신위·조진화·윤정력·홍희응·서유순 등이 홍문록에서 3점을 받다"

주3

강화부 안핵어사 : 『순조실록』 6권, 1804년(순조 4) 12월 10일. "강화부의 중군 이만원이 불법으로 조사를 행하여 교리 김상휴를 강화부 안핵 어사로 삼다"

주4

암행어사 장계 : 『순조실록』 11권, 1808년(순조 8) 6월 11일. "공충 우도 암행 어사 김상휴가 살핀 바를 아뢰다"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