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예문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용(季容)
  • 초천(蕉泉)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주(廣州)
  • 사망 연도1827년(순조 2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판서
  • 출생 연도1757년(영조 3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호
  • 최종수정 2026년 01월 1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판의금부사, 예문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계용(季容), 호는 초천(蕉泉). 김만근(金萬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진륜(金鎭崙)이고, 아버지는 김무택(金茂澤)이며, 어머니는 윤득영(尹得永)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03년(순조 3) 증광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홍문록에 올랐다. 이듬해 교리(校理)로서 강화부안핵어사(江華府按覈御史)로 나아가 강화부 중군 이만원(李晩遠)의 불법을 다스렸다.

1805년 시독관으로 『강목(綱目)』을 강독하면서 임금에게 선악을 밝게 할 것을 아뢰었다. 이듬해 수찬(修撰)이 되었으며, 1807년 응교(應敎)가 되었다. 이듬해 공충우도(公忠右道: 현재 충청도의 일부)의 암행어사가 되어 관할 지역의 목사 · 군수 등이 백성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다는 장계(狀啓)를 임금에게 올렸다.

1810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그 공로로 1812년 가의대부(嘉義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1817년 강화부유수, 1819년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 · 대사간이 되었으며, 1822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824년 형조판서 · 좌부빈객(左副賓客) · 의정부좌참찬 등을 거쳐, 이듬해 판의금부사, 1826년 예문관제학 ·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2

    : 홍문록 등재 : 『순조실록』 5권, 1803년(순조 3) 12월 6일. "강세륜·이영하·임백희·김계온·신위·조진화·윤정력·홍희응·서유순 등이 홍문록에서 3점을 받다"

  • 주3

    : 강화부 안핵어사 : 『순조실록』 6권, 1804년(순조 4) 12월 10일. "강화부의 중군 이만원이 불법으로 조사를 행하여 교리 김상휴를 강화부 안핵 어사로 삼다"

  • 주4

    : 암행어사 장계 : 『순조실록』 11권, 1808년(순조 8) 6월 11일. "공충 우도 암행 어사 김상휴가 살핀 바를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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