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 때 호부낭중(戶部郎中)에 제수되고, 1088년(선종 5)에 태복소경(太僕少卿)으로 요나라에 파견되어 전매 이익을 독점하던 압록강 각장(榷場)을 설치를 중지하도록 요청하였다.
1095년(헌종 1) 형부상서(刑部尙書)와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가 되었다가 그해에 추밀원사로 승진하였다. 숙종 초에 좌복야판호부사(左僕射判戶部事)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에 올랐다가 1102년 치사하였다. 그는 청렴하고 과감하였으며 관리의 재능이 있었고, 재산을 모으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사퇴를 청할 때가 되었는데도 언짢아하며 사퇴하지 않아 당시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