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아버지는 직사관(直史官) 차거수(車擧首)이다. 일찍이 아버지가 예언하였던 대로 형 차약춘(車若春)은 문관으로 입신(立身)하였고, 차약송은 장군이 되었다.
금위(禁衛: 궁중을 지키고 임금을 호위·경비하던 친위병)에 들어가서 명종(明宗) 초에 낭장(郎將)을 거쳐 장군이 되었으며, 내시다방(內侍茶房)을 겸직하였다. 이것이 무관이 내시다방을 겸직하게 된 시초가 되었다. 신종(神宗) 초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수사공 참지정사(守司空參知政事)에 이르렀다.
기홍수(奇洪壽)와 더불어 중서성(中書省)에 앉아서 공작(孔雀)과 모란(牡丹) 기르는 문답을 하였으므로 이때 사람들이 “재상의 직책은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경륜함에 있는데, 다만 화조(花鳥)를 논하고 있으니 어찌 백관의 의표(儀表: 몸을 가지는 태도)가 되겠느냐.”라고 조롱하였다. 수태위중서평장사(守太尉中書平章事)에 이르러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