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1년(원종 12) 낭장으로 삼별초(三別抄) 토벌을 위하여 김방경(金方慶)을 따라 참전하였으나, 싸움에는 힘쓰지 않고 남의 재산을 약탈한 것이 드러나 김방경에 의하여 재산이 몰수되었다.
1277년(충렬왕 3) 김방경에게 파면당하여 평소 감정이 있던 전(前) 대장군 위득유(韋得儒), 중낭장 김복대(金福大) 등과 함께 김방경이 역모를 꾀한다고 무고하였다.
이듬해 원나라 장수 홍다구(洪茶丘)의 도움으로 장군이 된 뒤 고려가 담선법회(談禪法會)를 여는 것은 원나라를 저주하는 것이라고 홍다구에게 무고하였다. 이에 진상규명을 위하여 김방경 부자, 위득유 등과 함께 원나라로 불려가는 도중 요가채(姚家寨)에 이르러 죽었다.